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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I는 생체 신호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심장의 박동수를 보여주는 심전도, 맥박신호인 맥전도, 근육신호인 맥전도, 뇌파 신호인 뇌전도, 호흡신호, 산소포화도 등을 의료기기 없이 컴퓨터만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몸에 센서를 붙여 얻는다. 이 때문에 생체신호를 잡아내는 센스와 수집한 생체 신호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하는 알고리즘 기술이 HCI의 핵심이다. "요즘은 관련 연구가 활발하지만 당시만해도 생소한 분야였죠.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이라는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인생을 바꾼 스승

길 대표는 대학원을 졸업하면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했다. 어느날 지도교수가 "창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각종 생체신호를 측정해 혈압을 잴 수 있는 길 대표의 연구가 사장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병원에서 쓰는 커프 혈압계 없이도 혈압을 잴 수 있는 수학적 모델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런데 평소 100곳 중 한 곳이 성공할까 말까 한 힘든 길이라며 제자들의 창업을 만류하던 스승님께서 세상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며 창업을 권유하셨죠."

부산대 산학협력단이 마련해준 사무실에서 홀홀단신으로 출발한 길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의 예비창업자 지원사업에 참여해 창업 준비를 했다. 1년가량 준비작업을 한 길 대표는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고향 부산에서는 귀 기울여주는 이가 없었다. "손목시계처럼 생긴 걸로 뭘 하겠다는 거냐, 삼성이나 애플이면 몰라도 자그마한 벤처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금방 망할거다 등등 가망이 없다는 말을 수백번도 들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경한 길 대표에게 금세 기회가 찾아왔다. 엑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가 기술을 알아봤다. 중기부가 운영하는 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인 팁스에 선정됐다. 지방 소재 벤처기업으로는 처음이었다.

길 대표는 2014년 7월 법인을 세웠다.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 사무실을 냈다. 인재들이 속속 찾아왔다. 하지만 원격의료를 금지하는 의료법이 발목을 잡았다. 집이나 직장 등에서 측정한 혈압 수치를 의사에게 원격으로 알려줘 진료를 받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그는 규제가 없는 미국 보스톤으로 본사를 옮겼다. 현지 직원도 채용했다. 허가 업무, 마케팅 등의 인력이었다. R&D는 한국에 있던 20여명의 연구원들이 맡았다. 미국 현지에서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시제품을 완성하고도 1년6개월 밖에 버티지 못했다. 투자받은 26억원은 금방 바닥났다. "미국 현지 지그원들의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컸어요. 게다가 부산대병원에서 1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결과를 미국 투자자들은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임상을 다시 하라고 하더군요."

○파산 직전에 다시 일어서다

2016년 말 빈털털이로 귀국한 길 대표는 쓰러져가는 회사를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곳은 없었다. 직원들도 모두 떠났다. 2017년 7월, 꼭 창업 3년 만에 그는 다시 혼자가 됐다. 집까지 팔아 버텼지만 연대보증을 선 10억원의 회사 빚 이자를 갚기도 버거웠다. 회사를 접어야겠다고 결심한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아내였다. "겨우 3년 고생해놓고 벌써 포기하려고 하느냐, 차를 처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라고 용기를 북돋워줬어요."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서울혁신챌린지대회가 눈에 들어왔다. 인공지능(AI) 기반 혁신 기술을 선발하는 대회였다. 1등 상금이 자그마치 5억원이었다. 16등에만 들어도 1억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후배인 정성훈 부산대 교수를 찾았다. AI 전문가였다. 심전도를 AI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보자고 설득했다. 서울대병원의 의료 데이터와 AI 기술을 기반으로 부정맥을 진단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213개 팀 중 1등이었다.

AI를 접목한 것을 계기로 길 대표는 사업 방향을 바꿨다. 혈압이 아닌 심전도를 측정하고 진단하는 웨어러블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했다. 시장 잠재력이 작지 않다는 판단도 섰다. 정 교수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했다.

○심전도 진단 시장을 흔들다

휴이노가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은 메모워치는 손목시계처럼 생긴 심전도 측정 장치다. 애플워치보다 3년 앞서 개발했지만 규제 탓에 허가가 늦어졌다. 심전도는 물론 심장박동수, 산소포화도, 호흡수, 활동량 등을 측정해준다. 증상이 있을 때나 주기적으로 환자가 직접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르는 방식이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AI로 분석해 의료진에게 제공한다.

메모워치는 지난 5월 심평원이 보험 급여를 결정하면서 의료 현장에서 쓰일 수 있게 됐다. 대당 200만원가량인 제품을 병원이 구매한 뒤 환자에게 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진단비 2만2000원 가운데 환자 본인 부담은 20% 수준이다.

휴이노는 가슴 부위에 붙여두기만 하면 심전도, 심장박동수, 호흡수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메모패치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식약처의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 회사 제품의 강점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정확도다. 길 대표는 "기존 심전도 측정기기인 홀터는 환자가 24시간 동안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데다 하루만 측정하기 때문에 부정맥을 잡아낼 확률이 60% 밖에 안된다"며 "메모워치나 메모패치는 14일가량 차고 있으면 진단율이 99%에 이른다"고 했다.

기존 심전도 측정 소프트웨어보다도 뛰어나다. 텔레메드, 필립스, 모르타라 등 글로벌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제품은 의사들의 육안 검사보다도 정확도가 낮다. 의료계에서 심전도 진단에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지 않는 이유다. 세계적 의학 저널인 뉴잉글랜드의학저널(EJM)이 모든 컴퓨터 기반 심전도 판독은 잘 훈련된 임상의사가 검토하도록 권고하고 있을 정도다. 길 대표는 "애플이 내놓은 애플워치나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심전도 측정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환자 치료에 쓰는 웨어러블 심전도 진단기로는 해외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둘째는 환자 편의성과 신속성이다. 홀터심전도 검사를 하려면 환자가 최소 4~5회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홀터를 착용하고 하루를 보낸 뒤 이를 탈착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진단 결과를 받으려면 다시 병원을 가야 한다. 반면 메모워치나 메모패드는 두세번이면 된다. 홀터 진단결과를 병리사 등이 판독하는데 2시간 넘게 걸리지만 휴이노의 분석 소프트웨어는 AI 덕분에 30분이 충분하다. 길 대표는 "서울대병원의 경우 심전도 검사를 받으려면 대기환자가 많아 평균 148일이 걸리지만 메모워치나 패드를 쓰면 10일 정도면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셋째는 앞선 기능이다. AI로 심전도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웨어러블 기기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제품은 아이리듬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제품은 배터리 수명이 최대 14일 이지만 휴이노 제품은 3주 가까이 지속된다. 실시간 데이터 전송과 원격의료 기능을 갖춘 것도 휴이노의 워치와 패드 제품이다. 데이터 분석 시간도 휴이노 제품은 짧지만 아이리듬은 5~6일이 걸린다.

○"3년 내 세계시장 60% 장악"

휴이노는 고려대 안암병원과 손잡고 규제샌드박스 사업을 하고 있다. 부정맥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이 이달에 종료된다. 임상 결과는 9월께 나온다. 길 대표는 "위험신호가 잡히면 곧바로 병원에 알려주는 임상시험"이라며 "지금까지 위급환자 2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휴이노는 동남아 시장 공략을 위해 베트남 진출을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진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심전도와 혈압 측정 기술을 더 고도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측정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길 대표의 목표는 2023년까지 세계 심전도 측정 시장의 60%를 점유하는 것이다. 메모워치의 국내 매출 목표만 3년 내 50억원 이상이다. 길 대표는 "코로나 확산으로 환자가 병원을 가지 않고 원격 모니터링을 받는 시대가 빠르게 열리고 있다"며 "AI 기반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질환을 진단하는 의료기기를 내놓겠다"고 했다.

상장도 추진 중이다. 길 대표는 "2022년께 코스닥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며 "외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회사가 운영될 수 있게 실적을 내겠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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